바깥생활 전혀 하지 않은 어느 겨울날,
15개월 아기가 갑자기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바로 소아과 오픈런해서 각종 검사를 했다.
피검사, 코로나, 독감 검사 등..
아이는 열이 끓고 있는데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다.
바이러스가 전혀 검출되지 않았던 것.
선생님은 감기 바이러스인 것 같다고 하셨고,
일단 해열제로 열을 다스리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열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4~5시간에 한번씩 계속 해열제를 먹였고,
심할 때는 교차복용도 했다.
열 보초를 서다가 깜빡 잠이 들었고,
어디선가 끙끙대는 소리에 놀라 깼다.
옆에서 자고있던 아이의 신음소리였다.
불덩이가 된 몸이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던 방안,
바로 불을 켰는데...
아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고,
입술과 입 주변은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
온갖 걱정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일단 119에 전화를 했다.
새벽에 의료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은 119 뿐이다.
어린 아가인데 40도가 넘으니
응급실 진료를 받는 게 낫겠다 하셨고
구급차를 배차해주셔서 아산병원 소아응급실로 갔다.
구급차에는 보호자 1명만 탑승이 가능했다.
엄마인 내가 구급차에 탔고,
아빠는 자가용으로 구급차를 뒤따라 왔다.
구급차 안에서도 아들은 온몸을 사시나무떨듯 떨었다.
체온을 쟀더니 41도.
이렇게까지 심한 고열은 처음이라 겁이 났다.
아이가 오한이 든 것 같다고
이럴 땐 열이나도 따뜻하게 해줘야 한다고 하셨다.
다행히 담요를 챙겨온 터라 담요를 덮어줬다.
열이나면 옷을 벗겨놓으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잤으면서
아이는 열이 난다고 기저귀차림에 긴팔 티만 입혀 재웠다. 그게 오한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무지한 엄마라 아이를 고생시킨 것 같아
너무 속상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20분쯤 지났을까.
아산병원 소아응급실에 도착했다.
다행히 아무도 없어 대기없이 진료를 받았다.
선생님은 고열 외엔 별다른 증상이 없기에
단순 고열로 진단을 내리셨다.
처방은 해열주사뿐이었다.
응급실 가도 해주는 게 없다는 것 잘 알고 있었다.
아기가 코로나 걸렸을 때도 고열로 응급실에 갔지만
온갖 검사로 아이만 힘들게 할뿐
결국 해준 건 해열제 처방뿐이었다.
그래도 아이의 상황을 즉시 진단할 수 있기에
응급실을 찾는 것 같다.
선생님은 다시 응급실에 내원해야 하는 경우는
탈수와 열성경련 증상이 나타날 때라고 하셨다.
오한과 경련 증상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열성 경련은 입에 거품을 물거나
까닥까닥 몸을 떨고 의식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오한은 몸을 덜덜 떨고 청색증을 동반하나
몸을 따뜻하게 해주면 증상이 사라진다.
소아과에서도,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도
고열의 원인을 찾을 수 없었던 게 가장 답답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알게 됐다.
돌발진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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