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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발견

나보다 날 더 귀하게 여겨주는 사람

by 민대표_ 2023.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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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가성비를 쫓으며 사는 인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풍족하게 자라오지 못한 탓에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는 가격대비 괜찮은 물건,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지갑을 열었다.
내게 취향은 사치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삼십대가 넘어서니 내게도 취향이 생겼다. 취향이 점점 확고해졌다.
아이보리나 베이지톤을 좋아하고, 넓고 환한 공간을 선호하고, 숲이나 나무같이 푸르른 느낌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깔끔하게 정돈된 모양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현실은 육아에 치여 어렵지만..)

내 이런 취향이 J때문에 생긴 건지, 나이를 먹으며 또렷해진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취향을 확고하게 다져준 사람이 J라는 건 확실하다. J는 내가 좋아하는 걸 선택할 수 있게 경제적으로 뒷받침 해주었고,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게 정신적으로도 지지해주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한 계기가 있다.
27주가 지난 오늘에서야 난 산후조리원을 선택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때 갔던 산후조리원 가성비 좋았으니 정 없으면 그리로 가야지, 라고 생각하며 예약은 손놓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J는 거기는 안 갔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얘기했다. 이유는.. 너무 후지다고.
난 그저 하하하, 하고 웃어넘겼다.

그런 말을 들은 김에 조금 더 나은 조리원이 있나 검색해 보았다.
J의 회사근처에 시설이 훨씬 좋고 쾌적한, 그러나 가격은 거의 두배인 조리원이 눈에 띄었다.
작년에는 쳐다도 안 본 곳이었다.

3주에 400이던 첫째 조리원,
이번에 찾은 곳은 9박 10일에 400.

간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려나 하고 조심히 물어봤다.

웬걸. J는 시설과 리뷰를 훑어 보더니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흔쾌히 여기로 가라고 했다.
이정도 시설은 되어야지, 그 골방같은 곳에 다신 보내기 싫다며. 밥도 잘 나오고 시설도 호텔같고 쾌적하다고.
자기가 예전에 갔던 조리원 같은 곳 보내려고 돈 버는 건 아닌 것 같다며.

고마웠다. 그냥 정말 고마웠다.
나보다 나를 더 신경써주는 사람 같았다.
나보다 나를 더 아껴주는 사람 같았다.

배우자를 고르려면 이런 사람을 골라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절대 넉넉하지는 않다. 여유롭지도 않다.
월세에 치이고, 생활비는 매달 월급 이상으로 써서 퇴직금 까먹고 살고 있다.
그럼에도 흔쾌히 내게 더 좋은 환경으로 가라고 권해주는 존재가 있어 너무 든든하고 고맙다.
사실 우리 형편은 나도 잘 아는데 말이라도 그렇게 해줘서 고맙다.

그래서 기록하고 싶었다.
나보다 나를 더 귀하게 여겨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잊지 않고 싶었다.

고마워. 여보.
내가 더 잘할게.
나도 더 많이 널 배려하고 생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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